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 - 기예르모 델 토로의 기괴하고 서글픈 피조물의 초상
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 후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30년 숙원 사업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평소 괴기스러운 크리처 장르의 팬으로서, 이번 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의 공개는 그 어떤 신작보다 기다려온 소식이었다. 150분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 내내 화면 가득 펼쳐지는 탐미적인 미장센을 직접 마주하며 느낀 경외감은 상당했는데, 다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제작 소식부터 공개일까지 손꼽아 기다려온 입장에서 시청하며 느낀 생생한 감상과 아쉬운 지점들을 가감 없이 기록해 보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30년 숙원 사업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등을 통해 기괴한 크리처 속에 숨겨진 인간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온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드디어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전의 재해석에 성공했다. 2025년 11월 7일 베일을 벗은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탐미적인 영상미가 극대화된 결과물이다.
1990년대부터 이 프로젝트를 공언해왔던 감독은 3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 끝에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150분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의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공포와 SF, 그리고 철학적인 드라마가 섞인 이 작품은 단순한 호러 영화를 넘어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윤리적 붕괴와 창조물의 고독을 심도 있게 파고든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고어한 묘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나, 이는 자극적인 연출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생명의 탄생과 파괴라는 비정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두 개의 장으로 나뉜 구성은 창조주인 빅터와 피조물인 괴물의 시점을 각각 조명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진정한 괴물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천재 과학자의 오만한 광기와 생명 창조
작품의 전반부는 죽음을 극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금기를 깨뜨린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뒤틀린 집념을 추적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줄거리는 1857년 북극의 황량한 빙하 위에서 부상당한 채 구조된 빅터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 문나이트에서 다중인격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했던 오스카 아이삭은 이번 작품에서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 천재 과학자 빅터로 분해, 지적인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광기를 소름 끼치게 묘사한다.
그는 하틀란더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시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려 하지만, 그 과정은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신성을 모독하는 추잡한 학살극에 가깝다. 특히 감독 특유의 정교한 세트 디자인과 고풍스러운 미술은 기괴한 실험실 풍경과 어우러져 묘한 불쾌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하지만 탄생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한 탓에 전체적인 서사의 속도감이 다소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빅터가 자신의 피조물을 거부하고 질주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기적인 행태는 영웅적인 과학자의 모습이 아닌, 책임감 없는 창조주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후 벌어질 참극의 서막을 알린다.
개연성을 잃은 감정선과 피조물의 외로운 투쟁이 빚어낸 불협화음
후반부 피조물의 이야기에서는 유포리아로 이름을 알린 제이콥 엘로디가 괴물 역을 맡아 압도적인 피지컬과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그가 장님 노인과 교류하며 언어와 인간의 따뜻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눈물겨운 여운을 남기지만, 전반적인 전개는 긴장감이 결여된 채 다소 잔잔하게 흘러간다.
여기서 영화 프랑켄슈타인 출연진들의 연기력과는 별개로 서사적인 개연성 문제가 불거진다. 특히 미아 고스가 연기한 엘리자베스가 괴물에게 동질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작스럽게 전개되어 관객의 공감을 얻기에 역부족이다.
1995년작에서 보여주었던 인물 간의 팽팽한 갈등과 밀도 높은 서사에 비해, 이번 작품은 괴물의 비주얼적인 기괴함에 집중한 나머지 인물들 간의 유대나 갈등의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느낌이다. 늑대를 때려잡는 괴물의 위용은 대단하지만, 그가 창조주에게 동반자를 요구하며 벌이는 협박과 복수의 과정은 95년작의 무게감을 담아내기엔 다소 평이하게 연출되었다.
감독의 장기인 크리처 디자인 역시 세련되긴 했으나, 기존의 프랑켄슈타인이 주던 투박하고도 공포스러운 매력보다는 다소 인위적인 외계 생명체처럼 느껴져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존재의 외로움에 관한 철학적 고찰과 결말
결국 모든 비극의 종착역은 북극의 차가운 빙하 위로 수렴되며, 창조주와 피조물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뒤섞인 채 파멸을 맞이한다. 영화의 관람평을 종합해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호러 영화라기보다는 창조에 따르는 책임과 인간의 오만이 초래한 고독을 다룬 서글픈 드라마에 가깝다.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두 존재의 화해와 용서를 급작스럽게 배치하여 서사적 밀도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했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만큼은 묵직하다.
특히 인공지능과 생명 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만든 존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은 이 작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네이버 평점이 9점대를 기록하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가 85%에 달하는 등 객관적 지표에서는 호평이 지배적이나, 95년작의 긴박함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150분의 러닝타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각적인 완성도와 오스카 아이삭의 연기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만, 후반부의 빈약한 갈등 구조와 개연성 부족으로 인해 6점이라는 평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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